
세상에 대한 편견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배신감을 느낄때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믿음이 땅에 떨어져 담배꽁초와 같은 처지가 되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 때서야 비로서 세상이 평등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걸 알게 된다.
그리고...그런 모순은 절대 바뀌지 않을것이라는것도 말이다..
내 손톱밑의 가시가 때론 누군가의 심장도 찌른다는걸 알았을때,
동정심.. 즉, '가지고 있는걸 주는 것' 그런 감정이 함께한다.
동정심은 상대적 위안을 주는 명약이다.
동정심은 카타르시스를 주며, 땅에 짓밟혀진 내 자존감을 조금씩 조금씩 되살려준다.
남의 고통이 나의 위안이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젠장할...
나에게 믿으라 현혹하지 마라.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믿음을 가지라 하는가.
믿음을 가장할 수 있다고 보는가?
역겨운 가식의 껍데기를 벗어라.
달콤한 언변과 똑똑한 머리회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 희망의 말을 하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로써 배신감을 주었는가.
당신이 지금 무엇을하는 사람인지 고개 숙여 발끝을 보라.
당신이 과거에 어떤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을 더욱 믿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치혀 낼름거리며 바쁘게 놀리지 마라.
잘돌아가는 머리 재잘거리며 유치하게 자랑하지 마라.
너의 깊이가 보이고
너의 마음이 읽힌다.
여섯개의 시선
호스티스를 교육시키는 학교

죽음보다 잔인한 구형

동정심인가? 무관심인가.

왜 저곳으로 건너려고 하지?
이해하지 못하는것도 편견..

정서불안 의사. 떨지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