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행, 그림'에 해당되는 글 5건

  1. [영화] 여섯개의 시선 2006/12/08
  2. [영화] 시간 2006/12/02
  3. [영화] 구타유발자들 (14) 2006/10/21
  4.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2006/08/12
  5. 어떤 무덤 (4) 2006/06/03
부디 다신 오지 말기를...

세상에 대한 편견은 내가 누군가로부터 배신감을 느낄때부터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믿음이 땅에 떨어져 담배꽁초와 같은 처지가 되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 때서야 비로서 세상이 평등하지도, 이성적이지도 않다는걸 알게 된다.
그리고...그런 모순은 절대 바뀌지 않을것이라는것도 말이다..

내 손톱밑의 가시가 때론 누군가의 심장도 찌른다는걸 알았을때,
동정심.. 즉, '가지고 있는걸 주는 것' 그런 감정이 함께한다.

동정심은 상대적 위안을 주는 명약이다.
동정심은 카타르시스를 주며, 땅에 짓밟혀진 내 자존감을 조금씩 조금씩 되살려준다.
남의 고통이 나의 위안이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젠장할...

나에게 믿으라 현혹하지 마라.
믿을 수 없는데 어떻게 믿음을 가지라 하는가.
믿음을 가장할 수 있다고 보는가?
역겨운 가식의 껍데기를 벗어라.
달콤한 언변과 똑똑한 머리회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기만하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 희망의 말을 하였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로써 배신감을 주었는가.
당신이 지금 무엇을하는 사람인지 고개 숙여 발끝을 보라.
당신이 과거에 어떤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을 더욱 믿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세치혀 낼름거리며 바쁘게 놀리지 마라.
잘돌아가는 머리 재잘거리며 유치하게 자랑하지 마라.
너의 깊이가 보이고
너의 마음이 읽힌다.


여섯개의 시선

호스티스를 교육시키는 학교

죽음보다 잔인한 구형

동정심인가? 무관심인가.

왜 저곳으로 건너려고 하지?
이해하지 못하는것도 편견..

정서불안 의사. 떨지마!
2006/12/08 16:27 2006/12/08 16:27

[영화] 시간

from 영화, 여행, 그림 2006/12/02 15:47
김기덕 감독의 '시간'


시간을 이해한다는건 참 어렵다.
시간은 무엇일까?
지구가 돌고 돌면서 밝은 때는 낮이라 하고 어두운 때는 밤이라 하여 이것이 반복되는 주기를 24개의 '시간'이라는 것으로 나눈것 외에 시간을 이해할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지?
시간은 일정한 주기로 계속 반복되고 있는게 아닐까?
아니면 시간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은 사실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며 변하는 것들에 대한 작은 표식들을 만들어 놓기 위한 것은 아닐까?

우리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하는건 사실 주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사람의 몸이 변하고, 사람의 마음이 변하고, 땅이 변하고, 바람이 변한다.
변하는 건 한번도 되짚어 돌아간적이 없으며 다만 조금씩 조금씩 끊임없이 이전과는 '다른 것'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주변 환경의 끊임없는 변화를 시간이 흐른다라고 말하는건 '시간'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의 것들은 한번도 똑같은 적이 없으며, 반복되는 일도 없었다. 그 어느때도 같은 적이 없었음에도 우린 우리 삶이 매일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하며 지루해하거나 염증을 느낀다.

일상의 무심함이 한번도 멈춘적 없는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대충대충 살아가면서 우둔하게도 변화를 열망하는건 어찌보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들에 대한 개념을 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대치한다면 시간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다.

시간은 되돌릴 수도 없고 멈추게도 할 수 없으며 빠르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안간힘과 변하지 않게 하려는 무모한 노력과 무언가 더 빨리 얻으려는 조급함이 부질없다는걸 진정으로 이해해야 하는것이다.
2006/12/02 15:47 2006/12/02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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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인 영화들을 보면 공통된 특성이 있다.
영화의 스토리를 따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대부분이 구별할 수 있는 '선'과 '악'의 대결을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인간의 '도덕성'이나 '선'과 '악'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서 재차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말로, '선'과 '악'의 구분이 영화처럼 그렇게 명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무엇이 '선'이며 '악'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혼란과 게다가 무언가 섬뜩한 설득력까지 있다면 더더욱 끝까지 영화를 지켜보는건 힘들수 있다. 이건 통념으로 무장된 가치관에 생채기를 내기 때문이다.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불편함을 주는 영화다.

영화에는,
과거 구타를 유발했던 사람과
현재 구타를 하며 새로운 구타를 유발시키는 사람과,
현재 구타를 당하며 새로운 구타가 유발된 사람과,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타가 방치되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구타에 의한 폭력은 상하관계인듯하면서도 순환을 하고 있다.

영화는 청소년기의 폭력이 성인이 되어서도 순환되며, 군에서의 폭력이 사회에서 다시 순환된다. 그리고 폭력은 전 세대의 책임이 그 다음 세대로 승계되기도 한다. 폭력의 순환은 그 사람의 본래 인간성과는 무관하게 굴레가 되어버리고, 전염병처럼 다음 사람에게, 그리고 또 다음 사람에게 옮겨간다.
그리고 사회에는 이기적이고 비겁하며 자신의 차에 쏟는 애정의 눈꼽만큼도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산다.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여 직시하는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니라고 극구 부정하기엔 영화가 너무나 설득력이 있다.

2006/10/21 12:14 2006/10/21 12:14

영화는 갈증나던 목마름을 단번에 씻어주었다.
마치 목줄기를 타고 퍼지며 짜릿하게 흐르는 청량음료처럼 말이다.

그런데 어쩐지 달콤한 물은 곧바로 더한 갈증을 가져왔다.
몸속에 흡수되지 못하고 목에 간질간질 걸려버린 청량음료의 설탕물처럼 말이다.

깊이없는 관찰은 가벼운 감상에 현혹되어 눈물짜기 100% 가능한 신파를 만들어 냈다.
가슴 따뜻해지는 동감이 아닌 비현실적인 상황들에 대한 동경은
영화가 끝나면서 곧바로 더 깊은 허무함만 가져왔다.

조금더 깊이있는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았다면,
이들의 해피엔딩이 결고 행복하기만한 해피엔딩은 안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해피엔딩은 앞으로 남아있는 행복하기 위한 힘든 과제를 해내야만 하는 비장함과 두려움 그러면서도 떨리는 '희망'을 보여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뻔했다.
2006/08/12 19:45 2006/08/12 19:45

어떤 무덤

from 영화, 여행, 그림 2006/06/03 15:25

파리 근교 작은 기차역이다.
누군가의 무덤을 '관광'하기 위해서 찾아간곳..
마음은 순례지를 가는 신도처럼 비장했지만 내 행색은 여지없이 호기심많은 관광객이었을테니까  말이다.
생각보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고 조용했고 겨울이어서그런지 한산했다.

오베르역..
파리에서 약 1시간 남짓 걸리던 그곳.
책을 보고 상상만 했던 그곳에 도착해보니 묘한 기분은 잠깐, 현실에 존재하는 그저 마을이었던것에 조금은 기대했던 마음이 진정되기도 했다.

밝은그린색의 나무 창틀이 예뻤다.
겨울의 막바지였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작은 마을 오베르는 동화속처럼 예뻤다.

마을의 뒷길
작은 마을의 특성처럼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로 마을의 집들이 있었다.
이 길은 마을 뒷산으로 길이 나 있는 골목길이다.
친절하게도 마을 곳곳에는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곳에 그의 그림액자를 걸어놓고 설명의 글도 덧붙여주었다.
'오베르의 교회'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그의 이 그림을 처음 봤을때 강렬한 열망과 염세적인 죽음의 느낌이 동시에 느껴지는 짙푸른 밤하늘의 색감에 소름이 끼쳤었다.
인쇄물로는 절대로 복사해낼 수 없는 생생한 색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한동안 그 앞에 매료되어 서 있었다.
오베르의 교회는 작고 조용한 교회였고 겨울이라 공사가 한창이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고흐미술관의 관광객들이 한순간 호흡을 멈추고 숙연지는 그림이 있었다.
마치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지켜보듯이 많은 관람객들은 그 그림앞에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듯 했다.
루브르 모나리자앞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소란스러움과는 대조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한장의 그림이 사람들에게 그런 경건함을 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그림은 그걸 가능하게 했었다.
나도 그들곁에서 한동안 얕은숨을 쉬며 그림이 뿜어내는 스산한 기운을 느꼈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이 곳은 그가 자신에게 권총을 쏘았던 장소이며, 3일 후 죽음을 맞이했다.
바람에 흗날리는 밀과 폭풍우가 올듯한 어두운 하늘, 그 사이로 나는 까마귀떼를 보며 자살을 결심한 그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조심스럽게 상상해 보려했었다.

그의 무덤과 누군가 놓고간 '해바라기' 액자.
동생과 나란히 놓여져 있는 그의 무덤은 오베르 마을의 외곽에 있는 공동묘지에 있었다.
공동묘지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이 된 곳 바로 옆에 있었으며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무덤주위엔 비운의 예술가를 추모하는 방문객들이 놓고간 그의 그림들이 비석뒤에 소리없이 놓여져 있었다.

파리로 돌아오는 기차안...
그에게 줄 선물하나 사가지고 오지 못한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그가 죽음을 선택할때 동양의 작은여자가 11시간을 비행기로 날아와 이렇게 작은 마을까지 그의 행적을 찾아다닐꺼라는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2006년 2월, 프랑스 오베르, 화가 고흐의 무덤에서..
2006/06/03 15:25 2006/06/03 1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