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있는 사람을 판별하는건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다.
깊이는 그 사람의 글이나 말의 내용, 생활습관에서 알아볼 수 있다.
깊이있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그것의 의미와 존재가 명쾌하다.
아니 그 무엇보다 단순하고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다.
이해하기 쉽다는건 의도에 대한 충분한 전달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며,
때론 의심의 여지없이 100% 동의의 의미이다.
이것들은 때로는 존경스러우며 때로는 무한한 감동을 준다.
그 깊이는 어쩌면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에 들인 시간과 관계 있어 보인다.
기획자는 깊이에 대한 강요를 스스로에게 항상 주문처럼 되뇌여야 한다.
이는 직업적인 윤리이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다.
기획자의 도덕성이 깊이를 더할때, 기획자의 사상이 깊이를 더할때, 기획자의 열정이 깊이를 더할때 기획자가 만들어내는 그것의 힘은 수십, 수백만 사람들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칠것이다.
암호같은 사전적인 단어들의 천박한 나열이 아닌
단순명쾌한 세련된 깊이를 스스로에게 강요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획자 일상사'에 해당되는 글 8건
- 깊이에의 강요 2006/06/27
- 난 탈퇴하고 싶은데... 2006/06/23
- 문서 작성 2006/06/09
- 정체성과 비전 2006/06/03
- 기획자와 함께 일한다는것 2006/04/24
- 역할 2006/04/21
- 역할분담에서 역할공유로 2006/04/13
- 창조적 관찰 2006/04/13
회사 동료의 생일을 찾아내는건 어렵지 않았다.
블로그 안부게시판이나 미니홈피 방명록을 뒤져보면 친절하게도 지난 생일날 남겨졌던 인사글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주민등록번호도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마당에 생일쯤이야 식은죽 먹기로 찾아낼 수 있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조용히 생일을 보내고 싶어했던 친구는 다른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영화도 보고 인도요리도 먹으며 생일날을 보냈다.
즐거웠는지, 알아줘서 고마웠는지는 자신할수 없다.
어쩌면 정말로 법석떠는 생일날 보다는 조용히 지난날을 회상해보며 그윽한 추억에 젖어있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공개된 정보는 쏟아진 물처럼 다시 주워담을 수 없는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네트웍과 정보유통공간과 각종 디바이스들로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광고홍보문구처럼 말이다.
...
사람들은 긴 글 읽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디지털 비전에 익숙한 어린친구들은 장황하거나 지루한걸 견디지 못한다.
도큐먼트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세하게 기록하려면 어쩔수없이 장황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서작성 방식이 어떤 경우엔 아주 잘못된 작업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란, 서로간의 정보지식의 수준을 맞추기 위한 문서작업일 경우에는 더더욱 치명적이다.
지식수준을 맞추려면 문서가 배포되었을때 그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 다들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가 되어 정보가 공유되어야 의미가 생기게 된다.
문제는 그 문서를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읽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간혹 '이상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오타까지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지식수준의 불균형이나 잘못 곡해된 정보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발생했을때나 참고자료로 활용될까? 그외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빛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이다.
결국 문서는 작성자에게 만족을 주는것으로 역할을 다하고 먼지구덩이속에 파묻히거나 슬그머니 이면지로 사용될 것이다.
지식수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우선 아이들을 가르치듯 아주 단순 명쾌한 요약본이 필요하다.
단 몇분만에도 전체 구도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 어떤 일들이 앞으로 일어날지 대한 1장 짜리 요약본말이다.
아쉽지만 첫 미팅은 여기에서 끝내야 한다.
욕심을 내다간 결국 큰 회의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게 될 것이다.
곧, 다들 슬그머니 바쁘거나 전화를 핑계로 나갈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다고 역지사지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자기가 주관하지도, 아직 연관되어 있지도 않은 일에 복잡하고 귀찮은 수십장짜리 문서를 이해할 정도로 에너지를 나눠주지는 않을 것이다.
안그래도 바쁜사람들이고 안그래도 귀찮은거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요약본으로 정보에 대한 전체 뼈대 구조를 이해하게하고,
그 다음 각각의 모듈별로 다시 요약본으로 세부 내역을 이해시키고,
그리고 그 다음단계 그 다음단계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간혹 대상자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별도 포맷의 문서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달해야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언어가 있다.
그래서 같은 한글이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이해도가 빨라지거나, 오해가 산적하게 되거나 하게 된다.
메일의 본문을 이용해서 첨부하는 문서의 요약내용을 전달하는것도 효율적인 방법이다.
첨부 문서만 달랑 넣어놓으면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서 미뤄놓기 십상이다.
나중에 보더라도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알려줌으로써 대략의 내용이라도 그림을 그리고 있을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 문서 작업의 첫번째 역할일 것이다.
역시 이것도 장황하다.
기획자가 회사 권력에 순응하는 정도에 따라 서비스는 그것의 고객으로부터 외면당할 요소들을 하나둘씩 종기처럼 달고가게 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서비스들이 런칭되며, 다들 나름대로의 포부와 비전을, 그리고 파란만장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진채 서비스들이 런칭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얼마동안 이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보니 그 애환과 고충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의 우여곡절 스토리에 가장 최전방에서 고객과 대치해야하는 사람들,
그들중에 하나가 바로 기획자들이다.
기획자의 강단은 밤을 잘 새는것으로 평가받는것이 아니라 얼마나 임원들의 무지막지한 오더와 압박을 견뎌내느냐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현실은? 부끄럽다.
아직까지 비수평적 조직구조를 선호하는 수많은 기업탓을 하는것만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는다.
기획자의 정체성은 모든 문제의 시작이며 모든 해답의 실마리가 될것이다.
꼭지점인 정체성의 부재는 기획자의 역할정의에서도 비전에서도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저...주위엔 똑똑한 말주변, 글주변과 외국서적 몇권 읽은 지식과 타고난 논리성으로 평가받는 몇몇 스타가 존재할 뿐이니 갈길이 멀다.
몇달간의 정체성 찾기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고민'으로 해결하기엔 평생을 걸어야할 만큼 진지한 문제이긴 하나 '고민'의 모습으로라도
조금씩 조금씩 한발작씩 앞으로 내딛는다는 희망으로 해답없는 생각들이 쌓여만 간다.
그 누구는 간단하게 생각하라 하고 그 누구는 당연히 고민해야할 일이라지만
어쨌거나 마음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손님처럼 떠오르는 상념들은 이제 또다시 나를 돌아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걸 멈추지 말라는건 너무 가혹하다.
잠깐만 숨고르기를 하고 싶다.
기회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지라도 말이다.
나는 상거래 서비스 기획을 꽤 오래 해왔다.
몇몇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크고 작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상거래 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물건을 파는것이라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서비스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한 서비스 구조와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과 개발 내역 또한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반복된 작업을 통해 나는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의 기획은 기존의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누구는 '내공'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누구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늙은 기획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두 '누구'의 말도 모두 맞다 인정되면서도 더 경계심이 생기는건 뒤에 있는 '누구'이다.
자칫 시니컬하게 보여질 수 도 있지만 사실 내 기획방식의 문제점은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한 많은 것들을 스킵하거나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분야에 대한 저평가이다.
저평가된 것들은 공교롭게도 나의 관심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의 관심사는 당연히 나의 지식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관심사의 종류에 따라 기획작업에서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소홀히 다뤄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패션 디자이너는 데코레이션에 집중하는가 하면 어떤 디자이너는 옷감에 집중하는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에 의해 소홀히 다뤄지는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도 중요도를 높여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쨌든 나는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으니까.
문제는 나의 고객이 언제나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축적해온 나만의 지식 분야와 개성적인 성향과 고정된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객중엔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맞는 기획자를 보는 눈이 없거나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여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기획자로써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지식의 폭'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비슷한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될거라 생각되는 기획자를 고르는것에 그친다.
그렇지만 실제 프로젝트에 돌입하여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점차 고객은 이 기획자의 사상에 의해 모든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 문항부터 그럴테니까 말이다..
'사상'이 없는 기획자는 가장 경계해야할 것중에 하나이다.
앞서 말한것처럼 커머스에서의 기본적인 서비스 정책 및 프로세스 등이 이미 상당부분 표준화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기획자든 조금만 부지런하면 그런 소스들을 구하여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소스들만 제대로 습득하여도 커머스관련 프로젝트나 서비스 운영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스에만 의존하는 기획자는 자신의 '사상'이 없이 다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오퍼레이터일 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기획자에게 있어 지식은 경험의 자료로써 활용되어야지 그 지식 자체가 쓰여질때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기획자와 함께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의 부가가치의 정도 및 프로젝트 진행의 효율성이 결정된다고 판단되면 결코 기획자를 단순히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기능공으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대학교수가 예비군복을 입으면 노상방뇨도 자연스럽게 한다고 한다.
평소 지적인 모습을 선호하며 프라이드 높게 보이던 그들도 말이다.
그 이유는 의복이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데,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얘기는 그 의복에 주어진 상징적 이미지에 매몰되어 의복에 맞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즉 예비군복을 입으면 바지한쪽을 대충 걷어올린채 바닥에 침을 밷거나 공사장 잡부처럼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세련된 턱시도를 입었을때는 귀족들의 행동처럼 우아하게 걷고 우아하게 미소짓고 우아하게 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건 모두 의복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가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더 재미있는건 그 사람이 장소에 따라, 의복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역할도 그 사람이 그 역할 만을 하도록 강요한다.
역할은 작지만 강력하게 어떤 사람을 그 역할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역할에 대한 저항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저항을 하면 할수록 그 역할의 마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주어진 역할에 그저 충실할수록 나는 퇴보한다는 것을 기억해야할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혹은 힘든 일들이 온라인에서는 기술과 인터넷의 특성으로 가능해 지는 경우가 있다.
오프라인에서의 실물상품은 온전한 완품의 상품이 다른 상품과 결합되어 재판매 될때도 그 형태를 변형시키지가 쉽지 않다. 더더욱 그 원래의 형태를 변형했을때 상품가치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실물상품은 원래의 상품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형태나 내용 그 어떤것도 변형하면 안되는 것들이 많았다.
즉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 팔아야 하고 사야했던 것이다.
디지털은 이런 엄격한 판매 방식을 개선시키고 훨씬더 다양한 방법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같은 소스로 실물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디지털상품을 만드는 것이 훨씬더 부가가치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이나 잡지의 경우 인쇄된 완권 하나를 온전히 사야 그 안에 있는 관심 챕터를 보고 소유할 수 가 있다. 결국 일부분을 보기 위해서 관심없는 주변의 것들까지 다 사야했던 것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울며 겨자먹기식 구매가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테지만 고객의 불만은 축적될것이고 그것이 충만해 있을때 이를 해소해줄만한 대체 상품이 나오면 지체없이 옮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손해라는 것이다.
경쟁자는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때로는 극단의 조치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기도 한다.
결국 자신을 죽이고 경쟁자를 물리치며 새로운 강자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 책이나 잡지의 경우 내가 원하는 정보의 챕터만 복수의 책과 잡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면 이는 구매자가 원시 소스의 컨텐츠를 재구성하여 자신만의 상품을 만들어 구매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구매자의 만족도는 급상승 할 것이고 판매자도 장기적으로는 보다 더 다양한 방법으로 컨텐츠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만들어 팔고 사는 단순 구조에서 원시 컨텐츠를 제공하면 이를 다양한 포맷으로 재구성하고 구매하는 구매자 능동형의 상거래 구조야말로 C2C의 거래량이 급상승하는 요즘 시점에 꼭 필요한 변화일 것이다.
실물상품의 C2C만이 아니라 정보(컨텐츠)의 C2C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UCC가 서비스업자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WEB2.0이라는 관련 경향도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불법 컨텐츠의 공유는 컨텐츠 생산자가 판매자가 또는 구매자가 되며 컨텐츠의 유료구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것이다.
왜냐하면 컨텐츠 생산자 자신이 바로 판매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몸과 정신에 이미 배어버린 습관적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제 점점 더 명료해지는 것은
기획은 언제나 '발견'을 위한 것이었지 '창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가끔 혹은 자주 기획은 새로운 것을 '창조' 하여 남과 다름이 증명될것처럼 착각하게 되지만 결국 결과물을 보면 언제나 우리곁에 있던 "너무나 단순 명료한 그 '무엇'"을 '발견'하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익숙한 것에 대한 객관적 관찰은 항상 필요로 했었다.
익숙함은 많은 것들을 생략하고 왜곡되어 보여지게 한다.
생략되고 왜곡된 것들에 대한 관심은 익숙한 것들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고 그 새로움 조차도 이미 자연스럽게 익숙해져버린 것을 찾아낼 수 있다.
가까운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란 익숙함에서 냉정히 한발 떨어져,
객관적인 관찰과 이를 비범한 시각으로 재구성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라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익숙함속에서 무디어지고 편안함으로 오해되는 불편함과 부족함 등을 발견할 수 있을때
보다 좋은 기획이 될 것이다.